살며 생각하며

사랑하나 정하나

능수 2005. 10. 23. 13:46

 

^사랑하나 정하나^

 

시월 셋째 주말 조금은 쌀쌀한 기온으로
옷깃을 여미게 하는 청아한 가을날
겨우살이 준비로 매년 언니 집에서 쌀을 가져오는데
올해는 다른 해 보다 일찍 방아를 찌었다고
형부전화를 하시어 시간 되는대로 가지러 오라고 하신다
새벽 일찍 출발할 때에 전화하고 간다고 하였더니
아침을 해놓고 기다리신다고 하신다

 

늘 시간에 쫓기며 사는 우리
잠시 애들 맡겨 놓고 이른 새벽에 출발을 하였다.
싸늘한 기온에 안게 자욱한 도심의 거리
시외로 나가니 맑은 공기에 청아한 날씨
안게 겉인 산과 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알알이 익어 추수를 한 논에도 군데군데
타작을 하지 않은 논에도 여름내 땀 흘린
농부들의 따스한 손길에 탐스런 알곡으로
우리네 양식을 만들어낸 양곡공장이다.
시냇가에는 한가로이 노니는 청둥오리 떼 지어 다니고
길섶에 잡풀도 짙게 채색되어간다

 

길가의 가로수 푸른 잎 사이로 은행나무 노랗게
단풍나무 붉게 물들어가고 산등성에도 알록달록
골짝이 마다 마을을 이루고 단내 풍기며 익은 감나무
잎사귀 떨어져 빈 가지에 누런 감이 주렁주렁
채소밭의 김장배추 싱싱하게 자라고
전형적인 농촌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늘 새장 안에 갇혀 살며
바보상자 안에 애환 늘어놓으며 살아가는 요즘
잠시의 외출은 조금이나마 가을을 담고 싶어
두 눈 크게 뜨고 들로 산으로 골짝이 마다
어울려 사는 농촌의 마을로 시선이 쏠린다. 
우리나라 국토 삼분의 일이 산으로 이루어지었고
가는 곳마다 저마다 사연을 담고 있어
아름다운 금수강산이라고 하나보다

 

독립기념관을 지나는 길목이라서
길가에는 사철 고운 꽃들로 찾아오는 길손을 반기고
철철이 바뀐 꽃들의 환한 웃음으로 반겨주고 있다.
구불구불 산길을 돌아 낙석 방지용 철조망을 오른 장미 넝쿨
노란 은행잎 사이로 간간이 얼굴을 내민 붉은 장미꽃
철모르고 피어 찬 서리에 후질근히 시들어버릴 것 같아
애처롭게 보인다

 

이른 시간에 출발하여 여덟 시쯤에 도착하니
형부는 일 나가시고 언니 혼자 아침상 봐놓고 기다리고 있다
얼싸안으며 반기는 언니
왜 이리 말랐느냐고 주름도 두 배로 늘어난 것 같다며
이젠 몸 좀 챙기고 살라고 몸 아프면 다 소용없어요
손자들에게 시달리고 몸이 안 좋아 병원 신세를 지었으니
부실할 수밖에 없지만 나이가 들수록 몸을 챙기며 살아야 할 것 같다.

 

언니와 아침식사하고 방앗간으로 쌀을 실으러 가는 길
예전에는 좁은 소 도로 다니던 길이 확장되어
고속도로를 달리는 듯 확 트인 길을 달리며
여기도 많이 발전하였구나 농토 위에 커다란 건물들이
우유 죽순 들어선 것 보니
이렇게 가다가는 주변의 농토는 사라지고
빌딩 숲으로 변할 것 같다

 

쌀가마니 열 개를 실으니 차가 내려앉은 듯 무거워 보이는데
남은 것을 실어다 주고 가면 좋으련만 얼른 와서 자야하기에
방앗간에서 실어 달라 하라고 하고는 언니만 내려주고
부지런 형부 일 가신다고 새벽 일찍 뽑아다 놓은 대파
검은 콩 밤 한보다리 담아주는 언니, 차 안이 한가득 싣고
고마움 감사함을 안고 돌아오는 길
짐이 무거워 조심스럽게 천천히 오는데
하늘 높이 걸린 구름 사이로 낮 달이 얼굴을 내민다.

 

형형색색 채색하는 산등성이 갈무리하지 못한 벼
듬성듬성 달린 과일들 찬서리 내리기 전에
거둬들여야 하는 농부들의 손길은 더욱 바빠지겠다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며 모처럼 만의
밖의 세상에 푹 빠져버렸다.
먼저 시누 이 집에 다섯 가마 내려놓고
얻어 온 파도 덜어 주고
부지런히 집에 것을 정리하고 보니 한나절이 다 되었다

 

정년퇴직을 하고도 어떤 일이든 마다 하지 않고
열심히 심고 가꾸어 나눠주고 사는 형부와 언니
무엇하나 버릴 것 없는 삶의 본보기가 되어 주워
늘 고마움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가을에는 산에도 들에도 먹을 것이 풍성하여
인심이 후하다고 한다
가을 산이 유혹하는 계절 넉넉하고 포근한 정으로
풍성한 가을을 맞는 것 같다

 

05.10.22
글: 매미 김순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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