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살며 사랑하며

능수 2005. 11. 13. 16:57

늦가을 월동준비로 주부들의 일손이 바빠진다
가장 먼저 담는 것이 동치미, 총각김치 담고 배추김치 담그고
여름에 사놓았던 마늘 까서 방아 갈아 위생 팩에 담아
냉동고에 넓게 펴 얼려두고 살짝 언 마늘 깍두기 썰 듯 썰어
위생 팩에 담아서 보관하여 국 끓일 때 한 덩이
나물 무칠 때에 한 덩이 하나도 버릴 것 없이 오래 두고 먹어도 괜찮다.

 

부지런한 언니 내외 덕분에 창고 쌀 가득 쌓아두고
부지런한 시누이 내외 덕분에 입동 전에 동치미 담고
총각김치도 배추 김장까지 담가오셨다.
밤에 김치 냉장고에 넣으려니 힘이 드니 담아다 주는 김장도
못 얻어먹게 생긴 것은 아닌지 싶고, 미안하고 고맙기만 하다
예전에 김장 많이 담가 나누어주고 먹었는데
이제는 얻어먹고 있으니 늦게 복이 터진 것 같다.

매일 시간에 쫓기어 살기에 뭐하나 제대로 해먹을 시간도 없이 사는 요즘
바쁜데 깐 마늘 사먹고 말라는 남편, 서산 마늘 장사가 왔기에 남편 모르게
살짝 두 접을 사놓던 마늘이 겨우내 놔두었다가는 다 썩어 몇 알 남지 않게 생겼다


하루에 한 접 이틀 동안 마늘을 깠더니 손끝이 맵고 아리다.
식당 이사 가기 전에는 마늘 가는 기계가 있어 잠시 빌려다 집에서 갈았는데
기계를 사기도 뭐하고 아파트 상가에서 갈아 오기로 하고 저녁 하려 가서
밥 안쳐 놓고 마늘을 갈아 오는데 버스 승강장 앞에 애들 신주머니 같은
조그만 지갑이 떨어져 있어 누가 지갑 잃어버리고 얼마나 찾았을까 중얼거리며
김밥집을 들려 김밥 두 줄 사고 급하게 저녁 준비하려고 달려왔다.

 

애들 신주머니 같은 조그마한 것은 던져놓고 부지런히 저녁준비 하고
교대로 밥을 먹고 나면 9시가 넘는다 인진쑥 물을 끓이고 마늘 갈아온 것
잘 펴서 냉장고에 넣고 냉장고 대충 정리하다 보니 시간이 많이 흘러
씻고 자려다 조그만 가방을 열어 보니 다 낡은 지갑에
만원 짜리 다섯 장과 천원 짜리 한 장 흰 봉투에는 두툼한 돈 봉투가 들어있다
애들 것인 줄 알았는데 어른 것이다. 주민등록증이나 연락처가 있나 찾아보니
병원 평생 진료권 은행 카드 몇 장 주민등록증은 없네

 

병원 평생 진료권을 보니 32년생 그렇다면 할머니 것이란 말인가?
할머니가 병원에 갔다오다 잃어버리고 얼마나 애태웠을까 생각하니
주인을 찾아줘야 하는데 연락할 길이 없어 다시 지갑을 뒤적거리다
입금할 때 보내는 사람 연락처를 적어 놓은 것이 있다.
밤이 늦었으니 밤늦게 전화를 할 수도 없고 아침에 가게에 와서
이 지갑 할머니 것 같은데 상가 앞에서 주었는데
주인을 찾아 줘야 할 것 같다고 지갑은 다 낡았는데
봉투에 돈이 깨 들어 있다고 하였더니
할머니 그 돈 잃어버리고 돌아가신다고 하겠다고 하면서
얼른 연락하여 주인 찾아주라고 서두른다.

 

그러잖아도 전화를 하려고 서둘러 올라왔다면서 전화를 하여
지갑 잃어버린 적 없느냐고 어디에서 잃어 버렸느냐고 간단하게 물어보고
젊은 여자가 전화를 받으며 반색을 하며 시제 지내려고 제사 흥정하러 왔다
잃어버리고 얼마나 애태웠는지 모른다며 너무 감사하다면서 흥분된 목소리
그럼 이곳으로 찾아오라고 하였더니 젊은 여자들 둘이 단숨에 달려왔다

할머니 것인 줄 알았는데 젊은 엄마들 것이냐고 하였더니
시어머니 병원 진료권이고 몇 해 동안 병원 생활하다 작년에 돌아가셨는데
주민등록증도 갖고 있고 진료권도 아직 버리지 못하고 있다면서
지갑이 헌 것은 남편이 처음 만나서 사준 지갑이라서 소중히 간직하는 지갑이란다.


현찰이 들어있으니 누가 주었으면 안 돌려줄 거라고 포기하라고 했다던 남편
이렇게 고스란히 돌아오리라 생각도 못했다며 너무 고맙다고 어쩔 줄 모른다
집안 사람 모두 모여 시제를 지내러 산에 갔고 공연히 다른 사람만 의심하였나
보라고 하면서 심란하고 죄지은 것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고 하면서
요즘 세상이 이렇게 돌려주는 사람이 어디 흔하지 않다고 지갑을 열어
몇만 원을 집어 주려 한다. 그것 받으려고 주인 찾아 준 것 아니니
그냥 갖고 가라고 젊은이가 어른 모시고 고생하며 아직도 시어니 물건을 가지고
있는 걸 보니 효부라고 하면서 얼른 시제 지내는 곳에 가보라고 보냈더니
다음에 찾아와 점심 대접을 한다고 하고는 돌아갔다.

 

길가 집에 살다 보니 가끔 휴지통에 빈 지갑이 수복이 쏟아진 것을 볼 때가 있다
소매치기하고 돈만 빼내고 지갑은 휴지통에 버리고 간 것들이다
신분증이 들어 있는 대로 그대로 쓰레기로 버려지는 것들
신분증만 꺼내어 우체통에 넣어 줄 때도 있지만 영 씁쓸한 마음이다.
아무리 하잖은 물건이라도 잃어버리고 나면 마음이 쓰리고 아픈 것인데
고운 때가 묻은 지갑 시어머님의 소장품을 잃고 마음이 아파했을지 짐작 할만하다

 

05.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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