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아쉬움과 미련

능수 2005. 11. 18. 14:06

 

 

아쉬움과 미련

 

아주 멀리 달려온 줄 알았다. 어제인 듯 잡힐 듯한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니 어제와 오늘 종이 한 장 차이뿐인 것 같은데, 이마에는 주름이 머리에는 새치가 인생의 훈장을 달았고,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작아지는 것이 몸소 느껴지는 나이, 지나온 흔적을 뒤집어 보고 싶다. 앞만 보고 달려온 수많은 날 무엇을 얻고 무엇을 버려왔나?

 

결코, 길지 않은 인생, 한치 앞도 모르고 사는 삶, 어려운 시절에 태어나 물질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풍족하지 않은 환경에서 부족함을 채우려던 욕망에 사로잡혀 넉넉하지 않은 삶을 탓하고, 부덕함을 탓하며 살아오지 않았나 싶다. 새 둥지 틀어 알뜰살뜰 한세상 아옹다옹 한세월, 때로는 애착으로 감싸주고 때로는 미움으로 갈등하던 수많은 날, 내 삶의 엉켜진 인연의 끈이 있어, 웃음도 지으며 눈물도 삼키며 살아온 날들이다.

 

우연히 인연이 되어 애정으로 만나 평생 지기 한 이불 덮고 자는 사이 부부라고 한다. 재일 가깝고도 먼 사이 부부, 남자가 바라는 부부 사이, 여자가 바라는 부부 사이는 어떤 마음일까? 부부가 되어 남자는 내 사람이니 격 없이 대해도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고, 여자는 내 사람이니 온 정성을 쏟아 안으로 품으려고 한다. 부부중심으로 하나의 가정이 이루어지고, 남편의 몫 아내의 몫을 충실히 하며 사랑하는 남편과 아내, 자녀를 위해 어떠한 어려움도 잊고 살아갈 수 있는 윤활유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가까운 사이이기에 허심탄회하게 속마음을 털어놓으며, 궂은일 마다하고 서로를 위해 나를 희생하며 한세월 지는 꽃이 되어간다.

 

가까운 사이어서 쉽게 털어놓은 말에 귀감도 하고 반감도 쉽게 털어놓고 하지만, 격의 없는 사이일수록 작은 말에도 마음의 상처는 더욱 깊다. 내 마음이 허하면 상대의 마음도 허하다는 걸 깨닫고 살아야 하는데, 내 마음만 허전하다 하소연하는 내 위주가 되기 십상이다. 이런 저런 일로 신경이 날카로워 조용하게 넘어갈 일에도 음성의 톤이 높아지고, 평생 부부로 살면서 몇 번은 헤어졌다 다시 만나기를 반복하는 쏟아지는 언어. 어려운 상황에서 협력하여도 모자랄 판인데, 입씨름으로 마음이 상하고 정신 어지럽게 한다. 세상을 얼마나 더 살아봐야 나보다는 상대의 말에 귀기울여주고, 내 위주보다는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며 살 수 있을까? 정답 없는 숙제 앞에 놓인 인생, 평생을 답을 찾지 못하고 숙제만 하다 갈지도 모른다.

 

가장 아름다운 보석은 갓난아이의 순결한 웃음이고, 가장 아름다운 사랑은 젊은이의 애틋한 사랑이고, 가장 값진 삶은 오랜 세월 함께 동고동락하며 노후를 함께 하는 노부부이다. 연륜에서 묻어온 온화함, 평안함으로 마지막 순간까지 서로 안식처가 되어주는 고운 삶이다. 어디가 끝일지 모를 삶 속에서 아직도 오르기만 하는 것인지, 이제는 조용히 내려오는 것인지 모를 삶의 끈, 내리막길이라면 추락하지나 말라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접한다.

 

인생의 반평생을 몸담아 왔던 곳, 희망과 기대, 실망, 좌절, 속에 뒤엉킨 안식처 떠나야 채비를 하여야 한다. 주사위는 던져지고 활시위 당겨질 준비는 서서히 다가오는데, 고운 인연의 끈과 해어짐, 아쉬운 이별, 새둥지에서 새로운 만남으로 인연의 고리를 만들며 살아가야 할 일들이, 기대와 반가움보다는 어설프고 두려움이 앞서는 것은 왜일까? 낯선 땅에 뿌리를 내려 새로운 인연이 어떻게 다가올지. 몇 년을 애착으로 가꿔온 직업 또한 새롭게 찾아야 하는데, 고운 연의 고리가 되어 찾아 주었던 많은 인연과 아쉬운 이별을 해야 하고, 요즘처럼 경기가 어려운 사항에서 새로운 직업을 선택하는 일도 쉽지만 않은 듯싶다.

 

오라 하지 않아도 오는 겨울, 가라 하지 않아도 가는 가을, 바람처럼 물처럼 나도 따라 흘러서 어디에 정착할지, 셋째 주 일요일에는 시부모님 산소도 이장하여야 하고, 길어야 이삼 개월 안에 이사할 집도 마련해야 할 형편, 정든 땅 정든 집 정든 인연과 이별연습을 해야 하니 만감이 교차한다. 내생의 한패이지 속에 고운 흔적도 미운 흔적도 남아 있는 곳, 채우는 일도 힘들지만 비우는 일 또한 힘들 다는 걸 깨달으며, 어쭙잖은 글로 어수선한 마음을 내려놓는다. 내 인생의 한패이지 획을 그어질지 오그라들지 모를 삶에, 뒤엉킨 실타래 같은 인생, 고움으로 업그레이드되는 삶이기를 추구하면서 조심스러운 하루하루를 연다

 


05.11.18.

매미 김순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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