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

여름 밤의 추억

능수 2005. 7. 28. 14:00


여름밤의 추억

 

한여름 긴긴 장마가 끝나고 불볕더위가 시작되면
저녁에는 동네 아주머니들이 옥수수 감자 삶아
언덕에 멍석 하나 깔아 놓고 둘러앉아 나눠 먹으며
하루종일 일하느라 피곤한 몸과 마음 정겨운 이야기로
하루의 피로를 푸는 곳이 야트막한 솔솔바람이 잘 부는
언덕배기가 동네 사람들 모여 정담을 나누는 명당이다.

 

멍석 깔고 누워 하늘을 바라보면 수없이 많은 별의 잔치
유난히도 반짝이는 별을 헤아리며 저 별은 나의 저 별은 너의 별
웃음 지으며 흥얼거리던 밤, 멀리 보이는 장고게
반딧불이 반짝이고 새벽녘에 논에 물고 보러 갔다온
이웃아저씨 늑대를 만나 새벽에 정신을 잃을 뻔했다는 얘기
장고게 넘어 공동묘지가 있어 장에 갔다 늦게 오는 날이면
장 마중 가며 무서워 덜덜 떨었던 곳이기도 하다

 

오늘처럼 장대비가 쏟아지는 날이면 냇물에 미꾸리 위로 올라와
어레며 들고 미꾸리 송사리 잡느라 정신없고
햇볕 쨍쨍한 날에는 한낮에 더운 열기 식히느라 냇가에서 모여
발가벗고 목욕을 하며 달이 뜨는 밤 누가 볼 새라 정신없이 물새려 받고
하하 호호 웃음꽃이 활짝 피울 적에 한 아이 기절하는 울음소리
거머리란 놈이 하필이면 거시기에 달라붙어 울부짖고 난리가 났다.
사네, 같았던 아이 하나가 간신에 때어주고 놀란 가슴 다독여주고
감싸주었던 소꿉친구들...

 

언니 오빠 따라 이른봄이면 딸기밭으로 오월이 오면 포도밭으로
자두 밭으로 수박 참외 원두막으로 저녁바람도 쐬면서 야밤의 먹을거리로
더운 여름의 열기를 식히고 여자들은 전등불을 들고 남자들은 그물을 들고
물흐르는 대로 발장구치며 구르면 많은 물고기가 그물에 걸려 깨끗이 닦아
가마솥에 끓여 라면에 어죽을 끓여 맛있게도 먹었지
길가의 밭이 있는 우리 집은 여름철에는 손에 닿는 곳은 고추가 남아나지 않았고
참외 수박은 물놀이하는 사람 몫이 되었고 과수농장은 여름철이면
비상 걸려 과수 지키느라 어른들 고충이었던 시절
예전에는 누가 서리해 갔다고 난리 쳤다가도 장난이거니 용서가 되었지만
요즘에는 도둑으로 몰려 감방 신세지기 십상이지만 예전에는 먹을 것이 귀하고
이웃 간의 정이 좋아 우연만 한 것은 애들이 장난한 것쯤으로 보아주셨던 어른이시다.

 


고향 땅 뒤로하고 새둥지 틀어 20여년 어쩌다 고향에 아버지 산소에 들려
동네 어르신 뵙는 날에는 호탕하시던 모습은 사라지고 너무나 늙어버린 모습
"안녕하세요.?"
"저 아시겠어요"
한참을 들여다보고
응 알지, 그래 어디 살고 잘살고 있는 것인지 안부를 물으신다.
우리가 한창일 때에 지금 우리 나이이었을 어르신, 이미 보금자리를 떠나
앞산 뒷산에 자리를 잡으신 분도 살아 계셔도 힘없는 눈동자에
초라한 모습을 보니 세월이 많이도 흘렀구나
거역할 수 없는 세월 앞에 우리네 앞날의 모습인 것을...
앞으로 고향에 찾아 와도 누가 알아볼 사람이나 있을지 가슴 한 칸이
텅 비어 오는 것을 느껴진다.

 

오늘같이 장대비가 쏟아지는 날이면 내리는 빗줄기를 타고 슬그머니
찾아드는 어린 시절의 애틋한 그리움 자락
비록 가진 것 없고 가난한 살림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지내던 시절
어느새 반백의 고개 앞에 서서 문득 그때 그 시절이 떠올라 그리움에
젖어버려 잊고 살았던 소꿉친구들을 그려본다.

 

050728

글.매미 김순옥

 

이상은 매미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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