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가을걷이

능수 2006. 9. 8. 11:47

 

가을걷이

지독한 더위에 비바람에도 꿋꿋이 버티어 온 오곡 과수나무 가을 햇살 안고 막바지 열기로 토실토실 여물어가고 있다. 누렇게 변해 가는 들판의 벼, 앞마당엔 붉은 고추 태양 볕에 마르고, 무게구름 사이로 토실토실 알밤 입 딱 벌리고 방끗 웃는다. 부지런한 농부의 가을걷이로 더욱더 분주한 요즘, 언니 집에 밤 밭을 6천 평 맡아 수확하느라고 정신없이 바쁜가보다. 시간 있으면 와서 밤 줍어다 먹으라고 전화가 왔다 그러잖아도 가을에는 도와주러 간다고 생각했는데, 애들 아빠가 몸이 안 좋아 잠시 쉬면서 잔 일만하고 있고 조만간 시간을 내어가야지 생각하고 있는데, 오늘은 시간이 있어 점심 먹자마자 언니 집에나 가자고 하기에 얼른 따라나섰다.

 

가을 하늘이라서 푸르고 높은지 차창 밖으로 보이는 넓은 들판에는 군데군데 벼를 벤 곳도 있고, 길가마다 수확한 우리고장의 특산물인 거봉 포도 조치원 복숭아 햇고구마 줄지어 행상이 늘어섰다. 아스팔트위로 질주하는 차 길가의 코스모스 제철을 만나 하늘하늘 춤을 추며 반가이 웃는 것 갖고, 가지마다 주렁주렁 매달린 사과 배 봉지에 곱게 씌워 달콤함으로 익어 가는 가을 들녘 보기만 하여도 배부르다. 40십여 분이면 도착하는 언니네 집 새벽부터 밤 따러 다니시고 벌써 많은 밤을 줍어다 동네 아주머니들은 고르고 계셨고 언니는 손자 보랴 밤 고르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이야기 나눌 시간 없이 얼른 산으로 직행 어느 길로 가느냐고 묻고는 출발했더니 형부 혼자 그 넓은 산을 오르내리며 줍고 계셨다. 밤나무가 너무 오래되어 이젠 밤이 너무 작아 밤 값이나 제대로 받을 수 있으려나? 공연히 헛고생만 하는 것은 아닌지 싶어 걱정을 하며 밤을 줍기 시작했다 집 뒤 공원에 밤나무가 있어도 한번 밤 줍어 본 적이 없어, 토실토실한 밤송이에 하나 가득 여물은 밤톨을 보니 재미있어 정신없이 발로 열고 집게로 담고 산을 오르며 알뜰히 줍었다.

 

줍어도, 줍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 밤송이 이, 많은 걸 언제 다 줍나 싶고 밤이 작아 담아도 좀처럼 채워지지 않는 포대, 형부는 선수가 되어 오르락내리락 금방 한 포대 잘도 줍는데. 밤송이 까며 담으면 운동은 잘되겠다고 생각했는데, 서너 시간을 쉬지 않고 밤을 까고 줍다 보니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아픈지 벌써 끼가 난다.

 

농사일 힘이 드는 만큼 소출도 없어 모두가 기피하여 젊은이들은 없고 나이 드신 분만 고향 땅을 지키고 있는 현실이다. 시내 근처이지만 사람 사서하면 품삯도 안 나올 것 갖고, 한 톨 두 톨 줍어 담아야 내 것이 되기에 날이면 날마다 밤 밭에서 사는가보다. 여름내 농약 주고 애써 가꾸어놓은 것 살짝 따 가는 사람도 있어 지키기도 하기에 더욱 어려운 것 같다. 시간에 여유를 두고 수확하는 것이 아니라 익는 대로 빨리 수확을 해야 하기에 숨돌릴 틈도 없이 밤 한술 뜨고 나면 밤 밭으로 향하는 형부, 언니는 어린아이 보느라고 함께 하지 못해 혼자 지루하기 그지 없나보다. 좀더 가까우면 시간 나는 대로 도와드렸으면 좋으련만 그라지 못하니 마음만 조급하고, 언제 시간 내어 온 가족이 다 모여 도와야겠다.

 

수확도 수학이지만 판로가 문제이니 장사꾼하고 거래를 하려고 그만 가자고 한다. 이렇게 날마다 작업하지 말고 주말과 휴일에 농장견학으로 주의 주민에 홍보하고 개방하면 어떠하냐고 한번 생각하고 애들 시켜 인터넷에 띄우고 많은 사람이 모여 밤 줍으면 힘드는 줄 모르고 좋을 것이라고 했더니 "그래" 이른 밤은 작아도 늦은 밤은 양도 많고 알도 좋으니 한번 생각해봐야겠단다. 먼저 줍은 것은 형부가 가져가시고 나중에 줍은 한 포대는 집으로 가져가란다. 애써지은 밤 맛나게 잘먹겠지만 미안한 마음이지만 다음에 시간 되는대로 또 오겠다고 하고는 해거름에 집으로 향했다. 창문을 열며 제법 싸늘한 기온이 불어오는 가을바람 여름내 더위와 씨름하고 비바람에도 용케도 견디어준 오곡이 있기에 우리네 먹을거리가 풍부한 것 같다.
 

 

 

 

06.9.8

 

사진: 한국의 산천님

 

글 :매미. 김순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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